제주도 강정마을 방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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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4-09-26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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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금년 연말연시 사흘간의 연휴를 제주도에서 보냈다 난생 처음 제주도를 구경했는데 거기에 동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운이었다. 아님 영영 못 갈 수도 있었을 게다. 한평생 휴가란 걸 모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정말 큰마음 먹고 떠난 여행이었다. 다녀오고 보니 여행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새로운 감성이 새록새록 솟아오른다.
삼나무 숲속과 해변의 올레길을 걸었던 일이며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귀양살이 했던 집, 그리고 박물관 등등 이름난 곳은 거의 다 돌아보았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시내를 제외하고 제주도 전체가 온통 관광지란 생각이 든다. 시내를 벗어난 모든 곳의 숲은 남국의 풍경을 연상시키고 거센 해풍에도 뒤틀어지거나 외틀어짐이 없이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은 시대의 암울함에 굽힘이 없는 기상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잊혀 지지 않을 그 경관들을 연상하는 마음 한 구석에 섬쩍지근한 한 풍경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곳은 강정 마을 곳곳에 내걸린 깃발들이었다. 한두 집 걸러 한 집씩 꽂혀있는 깃발들에는 격한 구호들이 적혀있었다. 물어볼 것 없이 그 깃발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었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거센 해풍만큼이나 격렬한 감정을 쏟아내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들어보니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감정의 골이 여간 깊지 않다 하였다. 얼마나 골이 깊은지 형제지간 부모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한 마을에서 같이 크고 같이 자란 죽마지우끼리도 서로 등을 돌리고 원수처럼 지낸다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혼탁과 혼란에 빠뜨리는 가장 위험한 요인이란 것쯤은 역사가 웅변해주고 있는데 왜들 그럴까.
종교의 편 가르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지금은 또 얼마나 죽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6.25 때 흑백논리가 분명한 이념주의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우리의 보모형제자매가 비명에 죽어갔으며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그런 그들에 의해 국론이 얼마나 분열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천인이공로 할 것 같다. 국론분열은 나라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면 사회와 집안은 물론 개개인의 신세까지 망치는 법이니 죄악 중에 죄악이라 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까닭을 알고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보편적 인간사에 있을 수 있는 그런저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거의가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해서이다. 형제지간도 돈이란 걸 두고 원수가 되는가 하면 죽마고우라 할지라도 이익을 위해서는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기 일쑤다. 전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그가 전우라면 목숨을 버려서라도 위험에 빠진 전우를 구한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서 이익을 위해서는 잔인하게 배신하니 인간은 물질을 위한 물질의 화신이 아닌가 싶다.
강정마을 사람들의 다툼도 알고 보면 이익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과 싸우다 보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음흉한 사람들의 반기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여겨졌다. 나의 판단이 잘못이기를 바라지만 이것이 바로 물질에 종속된 인간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서글픔마저 들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순박한 그들이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 때문이었다. 이념의 굴레를 철갑처럼 단단하게 덮어쓰고 나라의 일을 사사건건 반대함을 일상생활화한 사람들에 의해 의식을 변화시켰을 것이라고! 그들의 주장에 물질에 종속된 인간의 속성이 발동해서 결국 투쟁의 길을 선택했을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익이 될 것이란 판단을 했거나 혹은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그리고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안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반대의 깃발을 내 걸지 않고 찬성의 목소리를 내었던 것이며 그로 인해 서로 간에 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럼 해군기지 건설을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무엇일까? 들어보니 이랬다. 크루즈 즉 호화관광 배가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해안이 좁아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배가 들어와야 그들 관광객에 의해 큰돈을 벌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으니 속이 뒤틀렸을 성싶다. 만약 배가 들어올 수 있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서는데도 과연 격렬한 투쟁의 깃발을 내 걸었을까? 반대를 위한 반대의 논리에 이력이 난 외부세력의 어떠한 반대 논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적으로 삼아 투쟁을 불사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명분은 전형적인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속 보이는 투쟁이라고 밖에 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명분이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관광객을 실은 배가 마을 해안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파헤쳐져야 하는 구름바위 훼손이라는 궁색한 명분이었다.
그런데 첫째 명분에 있어서 세계적인 관광지인 하와이 같은 곳도 지금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해안의 폭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즉 현재 건설하고 있는 기지는 순수 군 시설이 아니라 민간의 이익을 생각하고 설계하였으므로 세계적인 관광지의 해안에 드나드는 입구의 폭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그들 관광지의 해안에 호화여객선이 일 년에 고작 한두 차례 정도밖에 입항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강정마을 해안에 얼마나 많은 여객선이 입항해서 관광객이 몰려들지도 의문이다. 일 년에 겨우 한 차례 입항하거나 어쩌면 한 번도 입항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과연 생각만큼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하고 두 번째 반대 논리인 해안에 그리 많지 않은 구름바위를 훼손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름바위라는 것이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 전역 해변에 즐비하다. 화산이 녹아 흘러내리다가 굳어진 모양이 마치 구름 같다 하여 구름바위라 하는데 제주도가 이미 화산의 땅이기에 여러 곳에 분포되어있다. 그런데 그런 걸 보기 위해 강정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마을에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순박한 사람들이 전문 시위꾼들의 교묘한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에 현혹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초에 제주도지사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민간의 이익을 위해서 크루즈가 입항할 수 있도록 입구의 폭을 더 넓혀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터무니없이 좁다는 주장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었다. 도지사로서 도민의 이익을 위한 도민의 지사로서 정말 온당한 주장인지 곱십어볼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어느 말이 옳은지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그때가서 사실여부가 입증되면 어느 쪽이든 책임을 면치 못할 터이다. 서울에 살고 있어서 제주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나의 객관적인 판단은 도지사와 반대하는 마을사람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까닭은 앞에서 이미 다 말한 대로인데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전해져오는 말 중에서 참 한탄스럽고 기가 막힐 말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쯤은 별 게 아니라 할 만큼 추악한 말이 전해진다. 말인즉 이렇다. 내가 배가 고파서 굶주리는 것은 참아낼 수 있어도 남이 배가 부른 것은 도무지 못 보아준다는 놀부보다 더 못 된 심보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 기지 건설이 입안 되었을 때는 잠자코 있던 사람들이 왜 이 정권에 와서 반대의 투쟁을 벌이는지 생각해보면 딱 맞는 말이다.
어느 의원이 말하기를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자기편이 하는 일은 다 옳고 같은 일이라도 남이 하면 안 된다는 심보가 뭐가 다른가? 옳은 일을 나만이 할 수 있고 타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심보야말로 이 세상을 흑백논리로 갈라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가정과 사회의 화합을 깨뜨리는 죄악이라 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세계의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도 안보요 둘도 안보일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동북삼성을 잃고 반도에 갇힌 우리민족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깝게는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 때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죽어갔으며 일제식민 시대는 또 어찌되었는가? 그리고 더 말할 것 없이 6.25로 인해 죽어간 조상들은 얼마이며 그로 인해 초근목피로 굶주린 세월이 얼마이던가!
나라를 지킬만한 안보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언제든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란 말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란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 더욱 절박하게 민족주의로 단단하게 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뺐고 빼앗기는 암투가 앞으로는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한 국가의 정책이므로 이해관계를 떠나서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설사 마을을 통째로 이주해야 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선순위를 국가안보에 두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하물며 군 시설 곁에 관광을 위한 시설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죽기 살기로 반대 투쟁을 벌이는 것은 나라야 어찌되었건 이익을 위해서는 내 알바가 아니라 하는 것 같아서 몹시 안타깝다.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은 내 몸이요, 내 몸이 머무는 곳은 집이며, 집이 마무는 것은 나라이다. 어느 하나 버려서는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몸도 귀하고 집도 귀하고 나라도 귀하다. 어디 황금에 비유할 수가 있으랴! 주의와 주장과 이익에 영혼을 팔아서 왜 귀한 것을 버리려 하는지 되물으며 제주도 여행 중에 느꼈던 한 가지 이야기를 맺는다.
삼나무 숲속과 해변의 올레길을 걸었던 일이며 바다로 떨어지는 폭포 추사 김정희 선생이 귀양살이 했던 집, 그리고 박물관 등등 이름난 곳은 거의 다 돌아보았다. 뒤돌아 생각해보니 시내를 제외하고 제주도 전체가 온통 관광지란 생각이 든다. 시내를 벗어난 모든 곳의 숲은 남국의 풍경을 연상시키고 거센 해풍에도 뒤틀어지거나 외틀어짐이 없이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은 시대의 암울함에 굽힘이 없는 기상을 일깨워주기도 하였다.
그런데 잊혀 지지 않을 그 경관들을 연상하는 마음 한 구석에 섬쩍지근한 한 풍경이 마음을 어둡게 한다. 그곳은 강정 마을 곳곳에 내걸린 깃발들이었다. 한두 집 걸러 한 집씩 꽂혀있는 깃발들에는 격한 구호들이 적혀있었다. 물어볼 것 없이 그 깃발들은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이었다. 마을사람들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으나 거센 해풍만큼이나 격렬한 감정을 쏟아내고 있을 그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들어보니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감정의 골이 여간 깊지 않다 하였다. 얼마나 골이 깊은지 형제지간 부모 그리고 태어나서부터 한 마을에서 같이 크고 같이 자란 죽마지우끼리도 서로 등을 돌리고 원수처럼 지낸다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이쪽과 저쪽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야 말로 세상을 혼탁과 혼란에 빠뜨리는 가장 위험한 요인이란 것쯤은 역사가 웅변해주고 있는데 왜들 그럴까.
종교의 편 가르기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으며 지금은 또 얼마나 죽어가고 있는가. 그리고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6.25 때 흑백논리가 분명한 이념주의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우리의 보모형제자매가 비명에 죽어갔으며 오늘날도 마찬가지로 그런 그들에 의해 국론이 얼마나 분열되었는지 생각해보면 천인이공로 할 것 같다. 국론분열은 나라를 망치고 나라를 망치면 사회와 집안은 물론 개개인의 신세까지 망치는 법이니 죄악 중에 죄악이라 할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까닭을 알고 보면 참으로 한심스럽다. 보편적 인간사에 있을 수 있는 그런저런 이유에서가 아니라 거의가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해서이다. 형제지간도 돈이란 걸 두고 원수가 되는가 하면 죽마고우라 할지라도 이익을 위해서는 의리를 헌신짝처럼 버리기 일쑤다. 전장에서는 생면부지의 사람이라도 그가 전우라면 목숨을 버려서라도 위험에 빠진 전우를 구한다. 하지만 세상에 나와서 이익을 위해서는 잔인하게 배신하니 인간은 물질을 위한 물질의 화신이 아닌가 싶다.
강정마을 사람들의 다툼도 알고 보면 이익 때문이 아닌가 싶었다. 해군기지를 건설하면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예측과 싸우다 보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음흉한 사람들의 반기로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라 여겨졌다. 나의 판단이 잘못이기를 바라지만 이것이 바로 물질에 종속된 인간의 모습이라 생각하니 서글픔마저 들었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을 순박한 그들이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왜 그렇게 되었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번개처럼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바로 그들 때문이었다. 이념의 굴레를 철갑처럼 단단하게 덮어쓰고 나라의 일을 사사건건 반대함을 일상생활화한 사람들에 의해 의식을 변화시켰을 것이라고! 그들의 주장에 물질에 종속된 인간의 속성이 발동해서 결국 투쟁의 길을 선택했을 것 같은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하지만 이익이 될 것이란 판단을 했거나 혹은 바른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 그리고 개인의 이익보다 국가의 안보를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니 반대의 깃발을 내 걸지 않고 찬성의 목소리를 내었던 것이며 그로 인해 서로 간에 투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그럼 해군기지 건설을 결사반대하는 사람들의 논리가 무엇일까? 들어보니 이랬다. 크루즈 즉 호화관광 배가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해안이 좁아서 들어올 수 없다는 것이 첫째 이유였다. 배가 들어와야 그들 관광객에 의해 큰돈을 벌 수 있는데 그럴 수 없으니 속이 뒤틀렸을 성싶다. 만약 배가 들어올 수 있고 큰돈을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서는데도 과연 격렬한 투쟁의 깃발을 내 걸었을까? 반대를 위한 반대의 논리에 이력이 난 외부세력의 어떠한 반대 논리에도 귀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적으로 삼아 투쟁을 불사하지 않았을까?
따라서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명분은 전형적인 제 이익 챙기기에 급급한 사람들의 속 보이는 투쟁이라고 밖에 달리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명분이란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관광객을 실은 배가 마을 해안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지 건설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파헤쳐져야 하는 구름바위 훼손이라는 궁색한 명분이었다.
그런데 첫째 명분에 있어서 세계적인 관광지인 하와이 같은 곳도 지금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해안의 폭과 같다는 말을 들었다. 즉 현재 건설하고 있는 기지는 순수 군 시설이 아니라 민간의 이익을 생각하고 설계하였으므로 세계적인 관광지의 해안에 드나드는 입구의 폭과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운영되고 있는 그들 관광지의 해안에 호화여객선이 일 년에 고작 한두 차례 정도밖에 입항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었다. 그렇다면 강정마을 해안에 얼마나 많은 여객선이 입항해서 관광객이 몰려들지도 의문이다. 일 년에 겨우 한 차례 입항하거나 어쩌면 한 번도 입항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과연 생각만큼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지 생각해볼 일이다.
아무튼 그건 그렇다 하고 두 번째 반대 논리인 해안에 그리 많지 않은 구름바위를 훼손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구름바위라는 것이 거기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제주 전역 해변에 즐비하다. 화산이 녹아 흘러내리다가 굳어진 모양이 마치 구름 같다 하여 구름바위라 하는데 제주도가 이미 화산의 땅이기에 여러 곳에 분포되어있다. 그런데 그런 걸 보기 위해 강정마을을 찾는 사람들이 그동안 얼마나 있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알기로는 그 마을에는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만큼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순박한 사람들이 전문 시위꾼들의 교묘한 반대를 위한 반대논리에 현혹돼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정초에 제주도지사의 인터뷰를 들어보니 민간의 이익을 위해서 크루즈가 입항할 수 있도록 입구의 폭을 더 넓혀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터무니없이 좁다는 주장을 거듭해서 강조하고 있었다. 도지사로서 도민의 이익을 위한 도민의 지사로서 정말 온당한 주장인지 곱십어볼 수밖에 없었다.
여하간 어느 말이 옳은지 나중에 밝혀질 것이다. 그때가서 사실여부가 입증되면 어느 쪽이든 책임을 면치 못할 터이다. 서울에 살고 있어서 제주도와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나의 객관적인 판단은 도지사와 반대하는 마을사람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그 까닭은 앞에서 이미 다 말한 대로인데 그러나 그 보다 더 중요한 이유 때문에 그들의 주장이 잘못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 전해져오는 말 중에서 참 한탄스럽고 기가 막힐 말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쯤은 별 게 아니라 할 만큼 추악한 말이 전해진다. 말인즉 이렇다. 내가 배가 고파서 굶주리는 것은 참아낼 수 있어도 남이 배가 부른 것은 도무지 못 보아준다는 놀부보다 더 못 된 심보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에서 기지 건설이 입안 되었을 때는 잠자코 있던 사람들이 왜 이 정권에 와서 반대의 투쟁을 벌이는지 생각해보면 딱 맞는 말이다.
어느 의원이 말하기를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과도 상통하는 말이다. 자기편이 하는 일은 다 옳고 같은 일이라도 남이 하면 안 된다는 심보가 뭐가 다른가? 옳은 일을 나만이 할 수 있고 타인이 해서는 안 된다는 심보야말로 이 세상을 흑백논리로 갈라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가정과 사회의 화합을 깨뜨리는 죄악이라 할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세계의 열강들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하나도 안보요 둘도 안보일 것이다. 역사가 말해주듯 중국의 끊임없는 침략으로 동북삼성을 잃고 반도에 갇힌 우리민족의 비극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가깝게는 일본의 침략으로 임진왜란 때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죽어갔으며 일제식민 시대는 또 어찌되었는가? 그리고 더 말할 것 없이 6.25로 인해 죽어간 조상들은 얼마이며 그로 인해 초근목피로 굶주린 세월이 얼마이던가!
나라를 지킬만한 안보태세가 갖추어지지 않으면 언제든 과거의 비극적인 역사가 되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오늘날 세계화란 말을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세계화란 말처럼 무서운 말도 없을 것이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위해 더욱 절박하게 민족주의로 단단하게 무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더 많이 갖기 위해서 뺐고 빼앗기는 암투가 앞으로는 더 치열하게 전개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은 국가안보를 위한 국가의 정책이므로 이해관계를 떠나서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설사 마을을 통째로 이주해야 하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우선순위를 국가안보에 두어야 함이 옳지 않을까? 하물며 군 시설 곁에 관광을 위한 시설을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죽기 살기로 반대 투쟁을 벌이는 것은 나라야 어찌되었건 이익을 위해서는 내 알바가 아니라 하는 것 같아서 몹시 안타깝다.
사람의 마음이 머무는 곳은 내 몸이요, 내 몸이 머무는 곳은 집이며, 집이 마무는 것은 나라이다. 어느 하나 버려서는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가 없다. 몸도 귀하고 집도 귀하고 나라도 귀하다. 어디 황금에 비유할 수가 있으랴! 주의와 주장과 이익에 영혼을 팔아서 왜 귀한 것을 버리려 하는지 되물으며 제주도 여행 중에 느꼈던 한 가지 이야기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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