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건강십훈 제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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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 14-09-2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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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산십훈 제 2절
“제 2절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니 용맹하게 떨쳐내자“ 이다.
사랑 병이란 것이 있다.
60년대 후반이라 기억된다, 그 당시 마산에서 서울까지 다니는 12열차라는 것이 있었는데 꼬박 12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라 그 긴 시간을 서서 다녀야 했다. 자리 하나에 세 명씩 몸을 밀착시켜 앉았는데 그런 좌석 하나 구하기도 힘들었던 참으로 열악한 시대였다. 그래서 꼼짝없이 통로에 선 채로 12시간을 견뎌야 했는데 그날은 운수 좋게도 두 남자 옆에 겨우 비집고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앉아 긴 시간을 검은 연기 뿜어대는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곁에 앉은 남자가 무슨 잡지인지 열심히 다 읽고는 나에게 읽어보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잡지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이야기만은 충격적이라 지금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사랑 병에 대한 이야기인데 바로 상사병이란 것이다.
참으로 기이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내용인데 내용이 이러하다. 지지리도 가난한 유복자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감히 넘보지 못할 부잣집 아가씨를 짝사랑하였는데 언감생심 아무리 노력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만 절망감에 사로잡혀 자리에 눕고 말았다. 홀어머니가 품팔이로 온갖 약을 다 써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애절한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절망감이 그 젊은이로 하여금 어떤 약도 약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어이 죽음직전까지 갈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고 말았다. 이에 유복자인 자식 하나 믿고 애자중지 키워온 홀어머니가 자신의 목숨을 대신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사연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의사로부터 상사병에는 오직 사랑하는 여자만이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어니가 어느 날 아들에게 말했다.
그 부잣집 아가씨가 사연을 듣고 너의 목숨을 구해주겠다 한다. 그러나 아가씨의 말인즉 야밤에 단 한 번 너를 만나주는데 절대로 얼굴을 봐서도 안 되고 말을 해서도 안 되며 만약 말을 하거나 얼굴을 보려고 하면 즉시 방을 나가겠다 하더구나. 하였다.
그리고 이날 밤 자정에 어머니는 그 아가씨인 채 하고 아들 방에 들어가 눈물을 머금고 자식과 성관계를 맺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어머니 무덤 앞에서 피를 토하며 통곡하다가 목숨을 끊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인륜마저 포기하고 자식에게 몸을 내던지고는 죽음으로 죄를 씻고자 했던 가슴 아픈 모성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우리는 곱십어보아야 한다. 바로 절망이란 병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해주는 그 젊은이의 사랑 병을 말이다. 사랑 병을 상사병이라 하는데 상사병에는 백약이 무효하다 하였다.
백약이 무효한 상사병, 그것은 절망이란 또 다른 병이다. 키에르케코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 하였다. 그만큼 절망은 인간의 모든 임무와 권리를 빼앗는다. 피폐한 정신은 가족 친구 사화와의 단절을 유발하고 목숨마저 갉아먹으니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아니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그렇다. 심리학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이면 본연의 정신을 잃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내부의 기관 즉 오장육부를 구성하고 생명활동을 하는 미생물들 역시 절망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스스로 죽어간다. 한 송이 꽃도 고와하면 아름답게 잘 피지만 미워하면 시들시들 죽어가듯이 절망이란 병에 걸리면 세포들이 기력을 상실하고 점점 죽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자신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에 왜 쌓이고 성내고 분노하고 증오하고 하는 일을 만나지 않으랴만 요는 그런다고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더 어려움 속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몹쓸 병에 걸렸을 경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그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절망은 더더욱 치료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체 면역력을 소멸시켜서 병을 심화시키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이란 심리변화가 찾아오면 즉시 알아차려야 한다. 아, 죽음에 이르는 병이 나에게 찾아왔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마치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용맹하게 떨쳐내야 병을 이길 수 있다. 그러니까 마음이 병을 반은 고친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이 있다 해서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면 어려움만 심화될 뿐 결코 성공이란 희망을 영원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제 2절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니 용맹하게 떨쳐내자“ 이다.
사랑 병이란 것이 있다.
60년대 후반이라 기억된다, 그 당시 마산에서 서울까지 다니는 12열차라는 것이 있었는데 꼬박 12시간이나 소요되었다. 자리에 앉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때라 그 긴 시간을 서서 다녀야 했다. 자리 하나에 세 명씩 몸을 밀착시켜 앉았는데 그런 좌석 하나 구하기도 힘들었던 참으로 열악한 시대였다. 그래서 꼼짝없이 통로에 선 채로 12시간을 견뎌야 했는데 그날은 운수 좋게도 두 남자 옆에 겨우 비집고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앉아 긴 시간을 검은 연기 뿜어대는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다가 곁에 앉은 남자가 무슨 잡지인지 열심히 다 읽고는 나에게 읽어보라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잡지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한 이야기만은 충격적이라 지금도 뚜렷이 기억에 남아있다. 사랑 병에 대한 이야기인데 바로 상사병이란 것이다.
참으로 기이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내용인데 내용이 이러하다. 지지리도 가난한 유복자로 태어난 한 젊은이가 감히 넘보지 못할 부잣집 아가씨를 짝사랑하였는데 언감생심 아무리 노력해도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만 절망감에 사로잡혀 자리에 눕고 말았다. 홀어머니가 품팔이로 온갖 약을 다 써보았지만 백약이 무효였다. 애절한 사랑을 이룰 수 없는 절망감이 그 젊은이로 하여금 어떤 약도 약성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다가 기어이 죽음직전까지 갈 정도로 병세가 악화되고 말았다. 이에 유복자인 자식 하나 믿고 애자중지 키워온 홀어머니가 자신의 목숨을 대신하기로 결심했는데 그 사연이 참으로 기가 막혔다. 의사로부터 상사병에는 오직 사랑하는 여자만이 고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어니가 어느 날 아들에게 말했다.
그 부잣집 아가씨가 사연을 듣고 너의 목숨을 구해주겠다 한다. 그러나 아가씨의 말인즉 야밤에 단 한 번 너를 만나주는데 절대로 얼굴을 봐서도 안 되고 말을 해서도 안 되며 만약 말을 하거나 얼굴을 보려고 하면 즉시 방을 나가겠다 하더구나. 하였다.
그리고 이날 밤 자정에 어머니는 그 아가씨인 채 하고 아들 방에 들어가 눈물을 머금고 자식과 성관계를 맺고 말았다. 그리고 다음 날 목을 매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젊은이는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는 어머니 무덤 앞에서 피를 토하며 통곡하다가 목숨을 끊었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 인륜마저 포기하고 자식에게 몸을 내던지고는 죽음으로 죄를 씻고자 했던 가슴 아픈 모성의 이야기가 심금을 울린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을 우리는 곱십어보아야 한다. 바로 절망이란 병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말해주는 그 젊은이의 사랑 병을 말이다. 사랑 병을 상사병이라 하는데 상사병에는 백약이 무효하다 하였다.
백약이 무효한 상사병, 그것은 절망이란 또 다른 병이다. 키에르케코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절망이라 하였다. 그만큼 절망은 인간의 모든 임무와 권리를 빼앗는다. 피폐한 정신은 가족 친구 사화와의 단절을 유발하고 목숨마저 갉아먹으니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아니할 수 있을 것이다.
의학적으로도 그렇다. 심리학적으로 심한 스트레스에 휩싸이면 본연의 정신을 잃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마음은 내부의 기관 즉 오장육부를 구성하고 생명활동을 하는 미생물들 역시 절망의 에너지를 뿜어내며 스스로 죽어간다. 한 송이 꽃도 고와하면 아름답게 잘 피지만 미워하면 시들시들 죽어가듯이 절망이란 병에 걸리면 세포들이 기력을 상실하고 점점 죽어가기 마련인 것이다.
이처럼 인간의 마음은 자신을 죽이기도 하고 살리기도 한다. 사람이 살다 보면 온갖 스트레스에 왜 쌓이고 성내고 분노하고 증오하고 하는 일을 만나지 않으랴만 요는 그런다고 뜻대로 일이 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오히려 더 어려움 속으로 몰아넣는다. 특히 몹쓸 병에 걸렸을 경우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그 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고 절망은 더더욱 치료하지 못한다. 오히려 자체 면역력을 소멸시켜서 병을 심화시키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절망이란 심리변화가 찾아오면 즉시 알아차려야 한다. 아, 죽음에 이르는 병이 나에게 찾아왔구나 하고 알아차려서 마치 전장에 나가는 병사처럼 용맹하게 떨쳐내야 병을 이길 수 있다. 그러니까 마음이 병을 반은 고친다는 사실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어려움이 있다 해서 절망에 빠져 괴로워하면 어려움만 심화될 뿐 결코 성공이란 희망을 영원히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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