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칼럼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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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대 박사의 의 명 학 이야기
2016년은 고혈압 중풍이 유행하는 해이다.
앎은 훌륭하다. 그러나 실천은 위대하다.”고 자작하고 자칭한 명언 한 줄을 남기고 오늘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의학지식이 전무한 어느 직장인이 있었다. 웬만해서는 성을 낼 줄 모르는 원만한 성격의 그는 오랜 직장생활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했다. 일도 하기 싫고 직장동료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눈에 거슬렸다. 심지어는 가장 가깝게 지내던 친구마저 보기 싫었다.
당장 직장을 그만두고 싶었지만 가족 생계 때문에 직장을 그만 둘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풀만한 그 어떤 즐길 거리도 찾지 않은 그는 성격마저 내성적이어서 무슨 일이건 그저 속으로 삼키기만 하였다.
그런 세월이 무려 5년이나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특별히 자극받을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 신경질이 극도로 치솟았다. 그동안 쌓이고 쌓였던 내면의 스트레스가 속으로 삼키고 억제해온 의지력을 무너뜨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분출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정신을 놓고 쓰러졌다. 쓰러진 곳은 시멘트 바닥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외상은 입지 않았다. 하지만 혼절한 상태에서 깨어나지는 못하였다. 주위의 도움으로 부랴부랴 병원에 실려 가서 검사를 받아보니 뜻밖에도 중풍이었다. 그것도 오래전부터 뇌혈관의 피가 미세하게 응고되기 시작한 자국이 사진에 선명하게 나타나있었다. 그 시기를 추정해보니 스트레스가 극심했던 몇 년 사이로 기억이 더듬어졌다. 그러니까 그의 중풍의 직접적인 원인은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그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스트레스는 간담이 주관하는데 간담은 한 번 성내면 두 번 성내는 에너지를 발산하고, 두 번 성내면 세 번 네 번 성내는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리고 그 탁한 에너지는 오장육부를 괴롭힐 뿐만 아니라 힘줄 신경선 핏줄 혈액 뇌혈관 피부 할 것 없이 경직시킨다. 그러니 그의 중풍은 스트레스를 받던 그날부터 예약된 것이었다. 그런데 세상에는 무슨 일이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세상의 창조가 음양이란 형이상이기도 하고 형이하이기도 한 요소들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세상사를 크게 구분 짓는 상대성은 선과 악이다 .권선징악을 최고의 정의로 규정하여 마땅히 선이 악을 이겨야 하지만 사실은 악이 선을 이기는 현상들이 세상 곳곳에 더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것을 우리는 세상의 병이라 하거니와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오장(五臟)에도 각각 선악이 있으며 역시 악이 선을 이기니 이것을 몸의 병이라 한다. 다른 말로 한 風이라 하는 간의 선악은 무엇이나 용서하는 어진 성품이 선이고 낙천적 기질이 특징이다. 상대적인 악은 무엇이나 용서하지 못하는 분노이고 스트레스 기질이 특징이다. 따라서 스트레스를 일으키는 주범은 간담인데 간담에 사기가 침범하면 의지와 상관없이 스트레스를 받는다. 아무튼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라 하였듯이 제 감정을 이기지 못해 악의 기질인 스트레스가 선의 기질인 낙천성을 억누르고 자신의 몸과 마음을 지배하여 병을 유발하게 되는 것이다. 하여간 스트레스는 만병의 원인이 된다. 상사병에는 천하에 약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마음으로 얻는 스트레스에 의한 병은 죽음을 부르는 악의 저주라 할 수 있다. 몇 년 전에 D일보에 “마음이 병을 얻고 마음이 병을 치료한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산장의 여인’ 노래 하나로 근 20년을 가요계의 혜성으로 인기를 누렸던 가수 권혜경 씨의 이야기다.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사랑마저 잃고 아무도 찾지 않는 산장에서 병든 몸으로 쓰라린 가슴을 부여안고 홀로 살아가는 여인의 슬픈 인생을 심혼을 울릴 만큼 절절한 감정으로 가슴 저리게 부르든 그녀는 그녀가 부른 노래 가사처럼 병을 앓고 산중 외딴 집에 홀로 살다가 몇 년 전에 외로움을 안은 채 세상을 떠났다.
그녀를 예로든 칼럼 인연으로 충청도 청원군 내면의 어느 높은 산 중 외딴 집에 살고 있는 그녀를 찾아갔을 때 처음 만난 나에게 그녀가 해준 첫마디가 이랬다. “선생이 쓴 글처럼 산장의 여인을 노래하다가 후두암을 앓고 산장의 여인이 되었다며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는 후두암 말고도 폐암도 앓았다 하였다. 사실 폐의 악은 우울한 감정의 스트레스다. 근 20년을 그런 노래를 불렀으니 폐암을 자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폐병으로 젊어 세상을 뜬 배호 김정호 등의 가수가 부른 노래가 다 가슴 저미는 우울한 노래였으니 말이다. 그런데 권혜경 씨가 들려준 이야기 중에서 기억에 남는 또 하나의 증언이 있다. 죽을 생각으로 깊은 산중에 왔으나 하룻밤을 자고나니 ”내가 애 죽어?“ 하는 생각이 불현듯이 들면서 전혀 뜻밖의 삶의 의욕이 갑자기 불꽃처럼 솟아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이상하게도 죽음은 생각조차 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맹렬한 삶의 욕구가 들끓으면서 무엇이건 몸에 좋다는 약초는 산중에서 찾아 다 먹었다 하였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돌아보니 예정된 시한부 삶의 기한이 훨씬 지나있더라 하였다.
삶의 욕망을 불태우든 그 날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한 에너지를 을 이길 수 있는 선한 생명 에너지가 샘솟았을 테니 암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간절한 삶의 욕망은 암에 좋은 약초를 찾아먹을 수 있는 곳으로 저절로 이끌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간절한 소망은 하늘도 움직여 반드시 이루어지니 말이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다라니(Tarani)라 하거니와 진실하게 마음으로 원하면 무엇이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희망도 절망도 먹는 마음 하나에 달렸다는 뜻이니 ”마음으로 병을 얻고 마음으로 병을 고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절망적인 병이라도 절대로 절망해서는 안 된다. 키에르케코르가 죽음에 이르는 병이 곧 절망이라 하였으니 절망이 가장 큰 스트레스라 하겠다. 어쨌거나 스트레스는 만병의 근원이다. 특히 중풍에는 치명적이다. 그런데 앞에서 이야기한 그 중풍 환자의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것 같다. 그는 그렇게 중풍을 앓은 뒤로 그야말로 가수 권 혜경 씨만큼이나 마음을 일변시켰다. 어떤 사람으로부터 몸에 미치는 스트레스의 해악과 마음의 힘에 대한 강연을 듣고 나서 부터였다. 중풍으로 쓰러지기 전에 시달렸던 극심한 스트레스가 중풍의 원인이었음을 절감한 그는 그때부터 간의 악과 상대적인, 선 즉 분노 없는 용서와 화평하고 낙천적인 마음을 갖기로 맹세하고 곧바로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보기 싫은 것 성나는 것 그 모든 것들을 보고 듣는 순간 그는 불쾌함과는 달리 무조건 웃음부터 지었다.
그랬더니 즉시 마음이 편해짐을 느낌과 동시에 낙천적인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참으로 짧은 순간의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 순간의 편안한 즐거움을 잊지 않았다. 생활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시시가각으로 마주치는 눈살 찌푸리는 그 어떤 일을 마주쳐도 웃음부터 지었다.
때로는 무시한다는 오해를 받기도 하고 속도 없다느니 하는 말을 들어도 개의치 않았다. 그리고 중풍을 앓은 후유증으로 그때까지 심하게 떨고 있던 두 손의 창피함과 불편함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면서 언젠가 좋은 인연을 만나면 나을 날이 있겠지 하고 낙천적으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정도 지나서였다. 과연 뜻밖의 인연을 만나 그리도 불편하든 손 떨림을 고칠 수 있었다. 그는 확실히 앎을 실천하여 불행을 행운으로 바꾼 인생의 승리자이다.
만약 그가 어느 학자로부터 들은 스트레스의 해악과 마음의 힘에 대한 지식을 앎으로만 간직하고 있었다면 그 지식은 쓸모없는 나부랭이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실재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도 쓰지 못해 자신의 몸을 망친 인물이 있다. 앞에서 예를 든 그 사람과 희한하게도 병을 앓은 과정과 병명도 닮았다. 그러나 하늘과 땅 차이로 다른 것이 있으니 바로 앎과 실천의 차이이다. 그 사람은 건강에 관한한 지식이 해박했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몸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일가견이 있었다.
뿐만 아니었다. 가벼우면 중풍, 무거우면 간경화나 간암을 앓을 수 있는 타고난 자신의 체질까지 간파하고 있던 인물이었다. 따라서 오랜 세월 음식과 약으로 몸을 관리해 나왔다. 하지만 그는 관리하지 못한 것이 하나가 있었다.
바로 자신의 감정 관리였다. 좋고 싫음이 분명한 그의 성품은 하고 한날 눈살 찌푸리는 일들을 보고 들으면서 주체 못할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미풍에도 소리 내며 허리 휘는 풀잎처럼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럼에도 그는 속으로 삼키고 일체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스트레스의 해악을 항상 마음에 두고 후회와 반성을 거듭했다. 그러나 그는 앞에서 예를 든 그 직장인처럼 실천하지 못하였다. 음식과 약이면 예방될 것이란 막연한 믿음의 위안이 만성화돼 점차 걱정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불의한 것에 분노하지 않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하루에도 수차례 씩 머리로 치솟는 스트레스를 속으로 터뜨리는 감정쯤은 일상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기어이 중풍을 앓고 말았다. 오른쪽 뇌혈관에 어혈이 꼈는데 과거에도 풍을 앓은 흔적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제야 그는 한탄하였다. “실천하지 못하는 앎이란 허망하기 짝이 없는 지식나부랭이란 것을!” 그리고 하늘에 감사하였다. 반신불수가 되지 않은 경미한 상태로 몸을 온전하게 보존해주었으니 용서와 포용으로 살라는 하늘의 경고로 받아들였다. 그리하여 그는 “부처의 거두지 않은 미소는 밀려드는 세속의 지독한 번뇌 스트레스를 멸하는 천하의 묘약” 이라 생각하고 웃음을 띠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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