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는 어질고 성스럽다 그러나 무자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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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법자는 어질고 성스럽다 그러나 무자비하다
여기서 말하는 무법자는 하늘과 땅이다.
하늘과 땅은 고대로부터 성스러운 숭배의 대상이었다. 하늘과 땅에 제사지내는 풍습은 가장 성스러운 공경의식이었다. 특히 하늘은 인간의 가슴 속에 우러러 받들 숭배의 대상으로 각인되어있기도 하다. 그래서 종교에서도 인성교육에서도 하늘을 공경하라 하였다.
그런 하늘을 두고 감히 무법자에 비유해 무자비하다니 얼핏 얼토당토 않는 말로 들릴 것 같다. 그런데 동양의 대철학자요 성인으로 일컬어지는 노자가 도덕경에서 말했다.
“천지불인 (天地不仁) 즉 하늘과 땅은 인자하지 않다”
하고 말이다.
불인(不仁)은 자비심이 없다는 뜻이니 무자비(無慈悲)한 것이다. 어찌하여 공경하고 숭배해야 할 하늘과 땅을 무자비하다고 했을까? 그 대답 역시 노자의 도덕경에서 찾을 수 있다.
“도는 천지만물을 탄생시킨 근본 뿌리로서 천지지근(天地之根)이며, 만물을 낳아주고 길러주는 생육의 덕(生育의 德)이 있다. 그리고 영원히 중단 없이 만물을 탄생시키는 도의 자궁을 곡신(谷神) 또는 현빈지문 (玄牝之門,현묘한 암컷의 문)이라 한다.”
만물을 낳아주고 길러주니 도는 지극한 자비와 모성애의 상징이다.
자연에서 보자.
이 글을 쓰는 날이 4월 중순이니까 겨울 내내 못 보던 꽃이 만발하고 얼어붙어 죽은 줄 알았던 풀잎이 파릇파릇 솟아나고 있다. 만물을 태어나게 한 도의 덕이 꽃과 풀잎에 감미로운 햇살처럼 빛나고 있음을 본다.
그런데 도는 그렇게 아름답게 태어난 꽃과 풀을 반드시 늙고 병들게 하여 죽여 없앤다.
“도는 태어난 만물을 사용한 뒤에 추구(芻狗)처럼 버린다.”
하고 노자는 도덕경에 기록해놓았다.
추구는 풀잎으로 엮은 개 모양의 똬리다.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제사지낼 때 개 모양으로 똬리를 엮어 향로나 제물을 그 위에 놓는 풍습이 있었다. 제사를 지낼 때는 귀하게 취급하였으나 제사가 끝나면 그야말로 하잘 것 없는 개 같은 풀 똬리니 아무데고 버렸었다. 도는 그렇게 자연을 아름답게 낳지만 때가 되면 추구처럼 버린다.
아름다운 꽃과 싱싱한 초목을 봄에 태어나게 하여 여름에 무성히 길러줄 때는 언제고 가을에 늙고 병들게 하더니 겨울에 가차 없이 죽여 없애니 도야 말로 만물을 추구처럼 버리는 무자비한 존재인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도의 영향력은 하늘과 땅의 변화에서 나타난다.
바로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의 변화규율인 것이다.
자연에서 보자.
봄이 되면 추위 중에서도 따뜻한 양기로 초목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우지만 한 달이 못 가서 꽃은 지고 대신 여름 더위로 무성하게 길러준다. 그러나 가을이 되자마자 건조한 氣로 초목을 말리고 겨울에는 추위로 죽여 없앤다.
말하자면 도는 하늘과 땅의 기운 즉 천기(天氣) 와 지기(地氣)를 변화시켜서 초목을 낳고 길러주다가 늙고 병들어 죽게 한다는 뜻이다. 천기와 지기는 크게 나누어 풍기(風氣) 습기(濕氣) 서기(暑氣) 조기(燥氣) 건기(乾氣) 한기(寒氣) 六氣이며, 이 六氣가 계절을 낳고 변화시켜서 초목을 낳고 기르다가 늙고 병들어 죽게 하는 것이다. 보다 자세히 천기와 지기를 분류하면 이와 같다.
“추위 속의 따뜻한 양기가 흐르는 풍기(風氣 의학용어로는 少陽이라고도 한다)가 봄을 낳아 싹을 틔우고, 음력 3월 봄의 습기(濕한 土氣)가 초목에 잎을 내고 꽃을 피우며, 햇볕이 내리쬐는 서기(暑氣 더위 의학용어로는 太陽이라고도 한다)가 여름을 낳아 초목을 무성하게 길러주며, 음력 6월 여름의 조기(燥氣. 熱 매우 뜨거운 土氣)가 열매를 맺게 한다”
그리고 더위 속의 서늘한 음기가 흐르는 건기(乾氣 의학용어로는 少陰이라고도 한다)가 가을 낳아 초목을 말리고 익은 열매를 몸체와 분리시키며, 음력 9월의 습기 한 방울 없는 건기(乾氣 건조한 土氣)가 찬 서리를 내리게 하여 초목을 죽음으로 끌고 가며, 얼어붙는 한기(寒氣 추위 의학용어로는 太陰이라고도 한다)가 겨울 낳아 초목의 생명을 앗아간다. 그리고 음력12월의 냉기(冷氣 어름처럼 찬 土氣)가 죽음의 겨울을 벗어날 양기 씨앗을 머금고 봄을 준비한다.”
그런데 도가 면면히 뿜어내어 계절을 낳아 변화시키는 천기와 지기가 비단 초목만 낳고 기르다가 늙고 병들어 죽여 없애지 않는다. 그 모든 생명체를 초목과 똑 같이 늙고 병들어 죽게 한다. 사람인들 천기와 지기의 영향으로부터 절대로 피해갈 수 없다. 초목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일원이고 육신 역시 흙 물 열 숨 쉬는 氣, 즉 공기와 에너지란 물질원소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물질이기 때문에 천기와 지기의 영향을 받아서 늙고 병들어 죽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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